인도의 신화를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신화와 종교는 한 끗 차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신화가 널리 퍼지고 대중이 원하는 방면으로 전개되다가 긴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신화의 어느 한 부분이 확대되고 달라진 내용으로 종교화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종교는 오늘날의 글로벌한 종교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대중의 불안한 심리, 아니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감과 연결되어 종교가 탄생할 수 있었고 지배계층은 종교의 최상단에 있어 종교의 힘을 빌어 지배를 단단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느 나라 역사를 봐도 같습니다.
인도신화에서도 이런 양상을 보입니다. 아리아인의 인도점령으로 원래의 원주민을 쉽게 통솔하기 위해 지배계급은 다스리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베다힌두교인 브라만교를 창시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인도의 창조신은 브라흐만이라고 했는데요 인도의 창조신화는 히브리의 신화인 말씀으로 창조되었거나 게르만의 신화에서 많이 보이는 죽어야 새로 태어나는 창조, 혹은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필연으로 나타나는 카오스상태, 즉 혼돈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창조신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브라흐만은 물 속에 스스로 씨앗의 형태로 들어가 발아되어 황금알이 되고 이 과정에서 창조가 된다고 했습니다.
브라흐만은 스스로 두 명의 인격신인 비누슈와 시바를 만들어, 물론 브라흐만이 여전히 으뜸신이긴 하나 나머지 두 명도 동등한 신으로 여겨 스스로 삼신일체의 신이 됩니다. 스스로 다른 두 인격과 동일시하는 것이죠
트리무르티의 인도신화는 세명의 신, 브라흐만은 창조의 신이고 파괴의 신이 되는 시바신, 창조와 파괴가 유지되게 하는 유지의 신 비슈누가 현대의 우리가 이해하는 힌두교의 세 신이 되게 됩니다.
인도신화는 유지의 신이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시작과 끝 사이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을 수 없죠,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상이 삶이가는 현존의 삶이니까요.
이런 인도의 창조신화의 시각은 죽으면 끝나게 되는 직선적인 삶에서 죽으면 새로 시작되는 순환적인 삶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질 수 있고 이런 삶은 삶에 임하는 근본적인 태도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베다힌두교의 브라만의 경전인 우파니샤드에는 '범아일여'사상이 있는데 우주의 근본은 브라만, 개인의 중심은 아트만이며 이는 궁극적으로는 같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대우주 브라만, 소우주 아트만이 브라만이 되고 아트만이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이런 사이클은 창조 파괴 유지는 반복되는 사이클로 이해하게 합니다.
브라만과 동일한 아트만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다르마와 카르마를 실천하며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다르만은 힌두교에서는 의무를, 카르마는 업이라 말합니다.
'돌아보는 신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소포타미아 길가메시의 영웅성 신화 (0) | 2024.11.13 |
---|---|
인도여신 사라스와티와 인간 마누 (0) | 2024.11.12 |
인도의 창조신 브라흐마의 탄생신화와 트리무르티 (0) | 2024.11.10 |
북유럽신화. 게르만신화.지크프리트. 시구르트 (1) | 2024.11.09 |
신화(mythos)와 문화.신화의 베일 (0) | 2024.11.08 |
댓글